위치 및 교통 안내
위치안내
교통편 안내
-
지하철경복궁역 1번 출구
-
버스
- 순환 1020, 1711, 7016, 7018, 702,2 7025, 7212
- 지선 171, 272, 601, 606, 700, 707, 708, 710
- 간선 9703, M7129
전시/미술
![배화여자대학교 [종로문화재단] 금빛으로 지은 옷을 여미다 2025.12.16. ~ 026.06.26. 배화여자대학교 도서관 1층 전통문화전시실 주최 배화여자대학교 혁신지원사업단 주관 협력 배화여자대학교 문화관광산업연구원 종로문화재단 종로문화재단은 올해 종로구 브랜드축제 개최 10주년을 기념해 한복을 넘어 우리문화 전반을 조명하는 종로K축제를 열었습니다. 종로K축제에서 아름다운 고증한복을 선보여주신 배화여자대학교 한복문화콘텐츠학과와 한복과 직금 공예의 조화를 만나보는 전시가 열립니다. 2025년 끝자락에, 금빛으로 지은 옷을 여미다 전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복식과 직금 기술의 우수함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금(金)·금(錦)ㆍ금(?), 금빛으로 지은 옷을 여미다 한복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소현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고 합니다. 이 문장은 백제의 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 온조왕의 궁궐 건축을 언급한 글입니다. 이것을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에서 儉而不至於陋,麗而不至於侈,斯爲美矣(검이불지어루, 려이불지어치, 사위미의), 검소하나 누추한 것에 이르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한 것에 이르지 않는 것, 이것이 아름다움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조선의 미를 상징하는 말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검약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박제가(1750~1805년)가 북학의」 에서 보물이 있어도 나라 안에서는 용납되지 않으니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남들은 날마다 부유해지지만 우리는 검소함으로 인하여 쇠퇴하고 날마다 가난해진다고 탄식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검약을 강조했던 조선 후기에는 금사를 넣어 짠 직금 직물을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했으나 조선 전기에는 직금 의상이 적지 않게 출토되고 있어서 착용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아름다우나 사치한 것에 이르지 않는 조선의 멋을 살펴보고자 금으로 장식한 여러 가지 복식과 그 매무새를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금을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법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금박(金箔)으로 입니다. 부금(付金)이라고도 하지요. 금사로 옷감을 짜낸 직금(織金) [금선(金線)], 금사뿐 아니라 색사를 넣어 무늬가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제직한 비단인 금(錦)은 금(金)과 동일한 무게로 교환할 만큼 값이 나가는 옷감이었습니다. 금분을 물감처럼 칠하여 장식하는 니금(泥金), 금사를 사용하여 수놓은 금수(金繡) 등도 있습니다. 니금은 회화에 많이 사용하지만 복식에도 종종 사용됩니다. 「상방정례』에 따르면 적의의 선단과 하피에 니금이 각각 5전(반돈, 1.875g) 소요되고, 면사에는 금박과 니금으로 장식하여 최금 1속5첩(150장)과 니금 3전(1.125g)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금으로 장식한 여러 가지 전시품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금사를 넣어서 짠 조선 전기의 치마, 저고리의 입음새입니다. 출토유물은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입어볼 수 없지만 출토 유물에 기반하여 새롭게 제작한 치마, 저고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입어볼 수 있으므로 동작 기능성과 외관 평가, 그리고 피험자의 주관적 착용감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조선 초기 여자 치마, 저고리의 착의 순서를 검토하고 입음새를 제안하였습니다. 조선 전기의 출토 저고리를 길이로 분류하면 40~50cm 내외, 60~70cm 내외, 80cm 내외의 3가지로 구분 됩니다. 40~50cm 내외의 짧은 저고리는 직금단을 비롯한 고급필단으로 제작되었는데 속에 입는 옷이라 면 고급 옷감으로 제작할 이유가 없었을 테고, 겉에 입는 옷이라면 다른 저고리에 비해서 길이가 짧은 이유는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치마를 먼저 입고 저고리를 나중에 입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도 착용했겠지만 회화자료에 보이는 것처럼 저고리를 먼저 입고, 저고리 위에 치마를 입는 착의 방식이 조선 전기까지도 유지되었던 것은 아닐지 등의 의문을 착의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선조대왕(1552~1608년)과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1555~1600년)를 위해 제작한 안락국태자전변상도(安樂國太子傳變相圖,日本高知縣佐川町 ?山文庫 소장)에 묘사된 채녀들의 모습처럼 저고리를 먼저 입 고, 치마를 그 위에 입었을 때 매무새나 착용감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겨드랑이에 달린 당이 행동을 자유롭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고리를 먼저 입고 치마를 나중에 입는 착장방식을 취하는 말군의 경우에 왕비와 세자빈의 말군[抹袴· 末古·?袴·襪袴]에는 백금선(白錦線), 백화문능(白花紋綾), 백화사주(白花絲紬) 등을 썼습니다. 1601년(선조 34) 의인왕후빈전도감의궤, 1632년(인조10) 인목왕후빈전도감의궤에 기록된 대렴용 말고 (末古)의 재료는 백금선(白錦線)이며, 1628년(인조 6) 소현세자가례, 1638년(인조16) 장렬왕후가례, 1681년(숙종 7) 인현왕후가례, 1702년(숙종 28) 인원왕후가례에 준비한 말군에는 스란, 최금 등이 소요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스란과 첩금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백금선 말고와 백화문능 스란 말군을 선보입니다. 앞부분에 덧주름을 잡아 길이를 줄여준 전단후장형 치마는 치마 위에 덧두르던 요비(腰)[또는 위상(圍裳)]의 조선시대 버전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1627)』, 『인조장렬후가례도감의궤(1638)』에 기록된 단저고리는 길이 40~50cm 내외의 짧은 저고리 명칭으로 이해하였습니다. 80cm 내외로 옆이 트인 긴 저고리를 광해군일기(광해 2, 1610년 5월 7일)에 기록된 당의로 보았습니다. 16세기의 직금 저고리가 예복으로 착용되었던 상황을 「중종실록』 중종 36(1541년) 12월 29일 기사 및 『명종실록』 명종 6(1551년) 9월 17일 기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깃과 수구, 섶, 겨드랑이 무에 회장 장식을 한 60~70cm 내외의 저고리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저고리로서 장저고리[당의] 아래에 입기도 하고, 단독으로 입기도 했을 터 입니다. 계측된 치수를 바탕으로 매무새를 어림했던 것을 실제로 제작하여 착용 상태를 경험함으로써 조선 전기의 의생활 풍습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도록 하였습니다. 저고리에 달린 여러 형태의 동정은 뒷목에 닿는 부위에만 덧대거나 현재 동정 대는 것처럼 목둘레 전체에 대는 방식 등으로 다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착의 실험을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조선 전기 저고리의 깃이 넓어서 착용자의 목이 가늘고 길면 더욱 고운 태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고리 속에는 한삼을 받치고, 치마 속에 입는 속곳, 바지 등을 속옷으로 갖추었습니다. 이번 전시가 우리의 아름다운 의생활 풍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sources/culture/img/editor/culture/editor_20251217103459_89973.jpg)
자료출처 : 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
※ 해당 행사 상세 정보는 상단의 '홈페이지 바로가기' 에서 참고 부탁드립니다.
관광 명소
| 관광지 | 위치 | 문의전화 | 홈페이지 |
|---|
관광 음식
| 관광지 | 위치 | 문의전화 | 홈페이지 |
|---|
관광 쇼핑
| 관광지 | 위치 | 문의전화 | 홈페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