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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친절한 서도건씨 책을 만나다 Episode3. 안창모 교수

친절한 서도건씨 책을 만나다 Episode3. 안창모 교수

  • 영상출처
    서울도시건축전시관-유튜브(seoul hour)
  • 등록일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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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00:42 우리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정점에 덕수궁이 있습니다. 덕수궁과 그 주변의 건축을 살펴보면 그동안 폄하되었던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의 실체를 돌아보게 됩니다. ≪덕수궁≫은 덕수궁과 근현대 역사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00:42 Deoksugung Palace exists at the point where the fate of our country changes. When looking around Deoksugung Palace and surrounding architectures, we could recall the reality of Emperor Gojong and the Korean Empire, which have been disparaged. ‘Deoksugung Palace’ contains Deoksugung Palace and the modern contemporary history.

00:44 조선을 대표하는 경복궁, 아름다워 세계유산이 된 창덕궁, 덕수궁은 논의 자체가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건축 역사학자인 덕수궁 소장님께서 역사적 관점으로 책을 집필해달라는 의뢰를 하셨고, 덕수궁과 정동을 가지고 근현대사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00:44 Gyeongbokgung Palace representing Joseon, Changdeokgung Palace that became the world heritage due to its beauty, but Deoksugung Palace has hardly been discussed. Director of Deoksugung Palace, then-architectural historian was requested to write the book from the historical perspective, and I came to write down the modern contemporary history with the theme of Deoksugung Palace and Jeong-dong.

03:46 외세가 조선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교류하자” 할 때, 고종은 이전의 왕들과는 다르게 개항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즉위 이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을 했습니다. 조선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인 대한제국으로 나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고종의 즉위’라고 생각합니다.
03:46 When foreign countries suggested ‘open the gate and exchange’ to Joseon, Gojong recognized it is necessary to open the ports unlike the precedent kings, and prepared the establishment of modern country after the ascension. I think the decisive opportunity to change the fate of Joseon and move toward the new country, the Korean Empire, is King Gojong's ascension.

06:39 1592년 임진왜란에서 경복궁과 창덕궁이 다 불타버리고, 1년 후 다시 돌아온 선조의 임시 행궁으로서 덕수궁의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 후 창덕궁 중건으로 공식적 왕궁이 아니었던 덕수궁은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거듭납니다. 고종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덕수궁은 일본과 지독한 악연을 가진 궁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6:39 In 1592 during Imjin War, Gyeongbokgung Palace and Changgyunggung Palace was burnt out, and the existence of Deoksugung Palace revealed as a temporary palace of Seonjo who returned in 1 year. Thereafter, Deoksugung Palace which not used to be a public palace, was reborn into the palace of Korean Empire due to the construction of Changdeokgung Palace during Ulmisabyung in 1895. Gojong joint together with Russia and started new movement to fight against Japan. It can be said Deoksugung Palace had a terrible relationship with Japan.

09:19 미증유의 국난으로 사용된 덕수궁은 준비된 궁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 굉장히 작습니다. 계획된 궁터에 마련된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과 달리 조선 건국 500년 이후 인구가 늘고 빈터가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되니 작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09:19 As Deoksugung Palace was used for unprecedented national crisis and not a prepared palace, its size is very small. Unlike Gyungbokgung Palace, Changdeokgung Palace and Gyungheegung Palace prepared in the planned site, it had no choice but started small because it settled down in the place without empty space due to population increase after 50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foundation of Joseon.

17:24 건축은 ‘개인의 창작’이기보다는 ‘사회적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기술자들, 노동자들의 기술과 재료가 들어가야 완성되므로 ‘건축을 보면 시대를 알 수 있다’, ‘건축은 사회의 거울이다’라고도 하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순간, 사회가 원하는 건축을 할 때 좋은 건축이 나오고 그 건축가의 역할이 평가받는다 생각합니다.
17:24 I think the architecture is not a personal creation, but a social product. Because its completion requires the technology of numerous technicians, workers and materials, people say "If you look at architecture, you can see the times." "Architecture is a mirror of society."
I think when you do the architecture of what society wants at the moment, good architecture comes out, and the role of the architect is evaluated.

20:05 한동안 건축가의 꿈을 꾸었던 사람으로 역사학자로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를 잡고 역사를 파헤치다 보니, 사회사로 건축 역사를 보는 관점이 생겼고, 6년간의 건설사를 다니며 기술사로서 건축사를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내가 배운 근대사가 일본이 쓴 근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축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사회를 바로 보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20:05 I have never imagined to live as historian because I dreamed of being an architect. While determining the theme of master thesis and researching the history, I came to have the perspective that view architectural history as a social history, and after working for a construction company for six years, I had a view of architectural history as a technician. Through continuous research, I have come to know that the modern history I have learned is the modern history written by Japan. I hope this would help to see our history and society right through the history of architecture.

내용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건축역사학자인 안창모 교수를 만나 책 ≪덕수궁≫과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