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프로그램
[서울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의 서울(상설전시 3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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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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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기간2024-01-01(월) ~ 2024-12-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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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시간9:00 ~ 18:00 (입장마감 : 17:30) 매주 금요일 21시까지 연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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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상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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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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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처
상세소개
서울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의 서울(상설전시 3존)
1904~1910년 국권피탈 과정 연표를 시작으로 1910~1945년 식민도시가 된 경성의 도시공간 변형,
항일민족운동, 근대화되는 도시생활, 전시체제 하의 경성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서울
1910년 8월,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여 조선이라 칭하고 일본 왕의 직속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총독은 조선 안에서 행정, 군사, 입법, 사법의 모든 권한을 쥐었다. 대한제국의 수도로서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이던 서울은 인천, 개성 등과 함께 경기도 소속의 여러 부府 중 하나인 경성부로 격하되었다. 서울은 명목상 일본의 지방 도시였지만, 식민 통치의 중추기관과 주요 기업, 교육기관, 문화시설이 모여 있어,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조선의 수도였다. 일제강점기 서울 인구의 20% 정도는 일본인이었는데, 그들은 주로 청계천 이남의 남촌에 거주하였다. 민족 차별은 일상적이었다. 모든 행정은 일본인 위주였고 대부분의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남촌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차별에 반발하면서도 남촌에 집중된 근대 문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였다. 남촌의 건물과 시설은 한국인들의 발길을 끌었고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근대를 체험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위주로 만들어진 시설들에서 한국인들은 이방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서울은 빠르게 근대도시로 변하였지만, 식민지 도시의 근대성은 한국인을 유혹하였을 뿐 포용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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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서울, 경성
일본은 한국을 자국 영토에 편입시켜 영구히 지배하는 한편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상징을 동원하였으며, 자국의 필요에 따라 식민지 개발의 방향과 순위를 정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 구상은 서울 공간에 표현되었다. 도로 체계는 일본의 군사적 목적과 경제적 요구에 따라 변화하였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시대 국권을 상징하던 건축물은 대부분 파괴되어 다른 용도로 쓰이고 가까이에 대규모 공공건물들이 새로 들어섰다. 도시 행정과 도시 관리는 언제나 일본인의 편익을 우선하였다. 총독부는 중일전쟁 직전인 1936년에 경성부의 영역을 확대하여 전쟁 물자 생산시설들을 배치하였다. 한국인들도 식민 통치에 적응하면서 도시 공간 곳곳을 변화시켰다. 오랜 전통과 식민지 도시계획, 도시민의 자율적 변경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식민도시 경성은 나름의 특징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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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민족운동의 상징, 경성
경성은 일제강점 초기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 1919년 거족적인 3·1운동이 첫 봉화를 올린 곳도 경성이었고, 의열단원을 비롯한 항일 의사義士들이 의거義擧를 단행한 장소들도 대부분 경성에 있었다. 종로 YMCA와 낙원동 천도교대교당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신지식을 전파하며, 새로운 대중운동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심 무대였다. 경성에서는 조선물산장려회,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농총동맹 등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설립되어 전국 운동의 지도부 구실을 하였다. 1927년 경성에서 설립된 신간회는 명실상부한 민족운동의 중추였다. 만주사변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기간 중 일본은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민족운동을 혹독하게 탄압하였으나, 경성의 지식인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민족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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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도시, 경성
1920~30년대의 경성은 근대화 도시계획의 가시적인 성과로 인해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경성의 중심가인 광화문통-태평통, 남대문통, 본정통, 종로를 중심으로 서양식 근대건축 관공서들이 들어서고, 전차 노선이 곳곳에 확대 부설되면서 새로운 근대 도시경관을 만들어냈다. ‘신문화’를 상징하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소비와 유행을 좇아 백화점, 카페, 극장 등 식민지 자본주의 상업공간을 활보하였다. 도시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준 근대 도시문화는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별적 도시계획으로 일본인 거주지인 남촌과 한국인 거주지인 북촌을 ‘번영-몰락’, ‘청결-불결’, ‘활기-음습’, ‘문명-야만’이라는 이중적인 식민지 도시로 특징지은 것처럼 한국인들의 대다수는 도시빈민이었고, 상대적으로 큰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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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을 덮은 전쟁의 그늘
1937년 중국 본토 침략을 개시한 일본은 1941년 전선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였다. 군국주의적 성격이 강하였던 일본 사회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극단적으로 군사화하였으며, 식민지 정책도 군사적 목적에 종속되었다. 경성에도 전쟁의 그늘이 짙어갔다. 모든 생산 요소가 군수 산업에 집중되어 소비재 산업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전쟁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화폐 증발增發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총독부는 생필품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배급제를 실시하였으나, 배급 물자는 언제나 부족하였다. 경성부민들은 극도의 곤궁 속에서도 강제 저축과 공출로 재산을 약탈당하였고, 방공 훈련과 사상 교육, 노력 동원으로 신체를 억압당하였다. 전시의 경성은 굶주린 주민들이 언제 전선에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에 떨면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거대한 수용소였다. |
※ 해당 행사 상세 정보는 상단의 '홈페이지 바로가기' 에서 참고 부탁드립니다.
위치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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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관광명소
관광지 | 위치 | 문의전화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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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정보는 서울열린데이터광장 에서 제공하는 관광 명소 정보입니다. (https://data.seoul.go.kr/dataList/OA-21050/S/1/datasetView.do)
관광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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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정보는 서울열린데이터광장 에서 제공하는 관광 명소 정보입니다. (https://data.seoul.go.kr/dataList/OA-21050/S/1/datasetView.do)
관광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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