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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충정로역이 왜 충정로역일까?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는?

  • 등록일 2022-11-30
  • 작성자 관리자

충정로역 10번 출구에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있다.ⓒ윤혜숙

충정로역 10번 출구에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있다.ⓒ윤혜숙


작년에 충정로역 근처로 이사를 했다. 충정로역에서 타고 내리다 보니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질문했다. “엄마, 충정로역이 왜 충정로역인 거예요?” “충정로역은 충정공 민영환을 기리는 뜻에서 충정로라고 이름 붙인 거야.”라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근데 엄마는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라면서 신기해 했다.


충정로역이 충정공 민영환을 기념해서 이름을 붙인 거라면 그것을 알리는 조형물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아쉬웠다. 그런데 최근에 충정로역 10번 출구 앞 교통섬에 충정공 동상이 세워졌다. 아이에게 충정공 동상을 보여주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맞지?”라고 말하니 아이가 수긍한다.


교통섬에 충정공 민영환 동상과 사료가 있어서 작은 기념관이 되었다.ⓒ윤혜숙

교통섬에 충정공 민영환 동상과 사료가 있어서 작은 기념관이 되었다.ⓒ윤혜숙


충정로역 10번 출구를 나오면 횡단보도가 있고 교통섬이 있다. 교통섬은 차량의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 처리나 보행자 도로횡단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교차로 또는 차도의 분기점 등에 설치하는 섬 모양의 시설이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섬이다. 그곳에 충정로를 상징하는 충정공 동상이 세워졌으니 이제는 충정로를 오가는 행인이라면 충정로의 유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충정공 민영환은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독립운동가이다.ⓒ윤혜숙

충정공 민영환은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독립운동가이다.ⓒ윤혜숙


충정공 민영환은 을사늑약하면 연관검색어로 등장하는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외교권이 일제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대궐에 가서 이를 반대했다. 그런데 일본 헌병들의 강제 해산으로 실패한 뒤 집에 돌아가 자결하였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은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에 항거해서 무력으로 맞서기도 했고, 백성들을 대상으로 민족계몽운동을 펼치는 분들도 있었다. 민영환은 이천만 백성들에게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알리면서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는 유서를 남겼다. 


충정공 민영환의 사료도 전시되어 있어서 민영환의 생애를 알 수 있다.ⓒ윤혜숙

충정공 민영환의 사료도 전시되어 있어서 민영환의 생애를 알 수 있다.ⓒ윤혜숙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諸公)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단지 (민)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다행히 동포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분려(奮勵)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죽음을 고하노라.”(‘경고대한2천만동포유서’ 중에서)


행인이 충정공 민영환 동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다.ⓒ윤혜숙

행인이 충정공 민영환 동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다.ⓒ윤혜숙


학창 시절 한국사 교과서에서 충정공 민영환을 한 줄로 접했다. 1905년 을사늑약에 맞서 충정공 민영환은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했다는 내용이다. 내가 민영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충정공 민영환 동상과 함께 민영환의 생애와 사료가 있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고위 관리로서 최초로 세계 주요 국가들을 일주하고, 국정 쇄신과 주권 수호에 온 힘을 다했던 인물이다. 또한 공화제 사상을 계몽하고 의회제 설립을 주도했던 독립협회 운동을 지원했다. 이번에 민영환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새삼 인지할 수 있었다.  


충정공 민영환 동상은 처음으로 이곳에 세워진 게 아니다. 충정로로 옮기기 전에 종로 조계사 옆 우정총국에 있었다. 그런데 2018년 ‘민영환 선생 동상 이전 추진위원회’에서 동상 이전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올해 8월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마침내 충정공 동상이 충정로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듯하다.


민영환 동상 앞을 지나는 행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동상을 올려다보고 벽면에 전시된 사료를 살펴본다.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바뀌는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충정로라는 지명의 유래가 생긴 독립운동가 한 분을 알아나가는 시간이다.


종로 1가부터 5가까지 이어지는 종로의 출발은 보신각종이다.ⓒ윤혜숙

종로 1가부터 5가까지 이어지는 종로의 출발은 보신각종이다.ⓒ윤혜숙


서울 시내 곳곳에 충정로처럼 지명에 얽힌 동상이 있다면 어떨까? 광화문광장 옆의 널찍한 도로는 세종대로다.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또한 광화문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종로의 출발점인 종로 1가에는 보신각종이 있다. 그래서 지명의 유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서울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라면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 등은 어떤가? 을지로는 을지문덕 장군, 퇴계로는 퇴계 이황, 충무로는 충무공 이순신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인물을 상징하는 동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퇴계 이황 동상은 남산도서관 우측에 자리 잡고 있다. 남산도서관이 학문의 전당인 만큼 남산도서관 좌우에 다산 정약용 동상과 퇴계 이황 동상이 있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긴 하다.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 등에 필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안내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우뚝 선 동상의 위엄에 비할 수 없으리라. 문득 과거 프랑스 파리로 여행 갔을 때 시내 여기저기 세워진 동상이 생각났다.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어서 가이드로부터 인물에 대한 안내와 함께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조선이 건국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600년간 이어져 온 서울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오랜 역사와 규모에 비해 지명과 연관된 동상은 부족해 보인다. 


세종대로와 나란히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윤혜숙

세종대로와 나란히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윤혜숙


충정로에 가면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세종대로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이, 종로에 가면 보신각종이 있듯이 서울 시내 인물과 관련된 지명엔 인물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동상이 세워져 있다면 어떨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따로 한국사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지명의 유래에 얽힌 조형물을 보면서 위인에 대해 자연스레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충정로의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충정로에 이전된 것을 보면서 지명과 연관된 인물의 동상이 제 위치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