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평온’을 주제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웰에이징 콘서트가 열렸다. 웰에이징 콘서트는 장년층인 50플러스 세대에게 생애주기별 문화예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서울시향의 프로그램이다. 이날은 그룹 '동물원'의 멤버이자 심리치료 전문가인 김창기 원장(생각과마음의원)과 서울시향 부지휘자 데이비드 리의 나이듦과 음악에 대한 대담도 함께 진행됐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20일 서울시향의 웰에이징 콘서트 ‘평온’이 열렸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 막 들어서는데 낯익은 향기가 와락 안겨왔다. 웰에이징 콘서트는 공연의 주제를 모티프로 조향된 향기를 미리 공간에 채운다. 이번 연주에서는 프리지아와 가드니아, 부바브와 베르가모트, 그리고 바닐라 향과 샌달우드 향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준비해 두었다.
웰에이징 콘서트에서는 주제에 맞는 향기가 공간을 채운다. ⓒ이선미
필자는 콘서트의 주제가 ‘평온’이라고 해서 마음이 더 당겼다. 아마도 평온을 얻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 비움홀에 조촐한 무대가 설치되고 좌석이 마련돼 있었다. 이미 겨울로 들어선 11월 중순의 콘서트는 바로크 음악으로 미리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특히 바로크 악기들로 구성한 프로그램이 더 정겹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바로크 바이올린과 첼로, 리코더, 쳄발로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텔레만의 ‘리코더와 두 대의 바이올린,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4중주’로 첫 연주를 시작했다.
특히 바로크 악기들로 구성한 프로그램이 더 정겹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바로크 바이올린과 첼로, 리코더, 쳄발로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텔레만의 ‘리코더와 두 대의 바이올린,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4중주’로 첫 연주를 시작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 비움홀이 바로크 음악을 위한 무대가 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도시유적전시관의 높은 천장까지 닿는 무대 벽에 영상이 흘렀다. 연주자들을 감싸는 영상은 묘하게 음악과 어우러졌다. 화면에서 구름이 모여들어 향처럼 피어 오르고, 동시에 지하공간에서 오래된 음악소리가 하늘로 올랐다. 쳄발로와 리코더가 프랑스 작곡가 오베르의 ‘두 성부를 위한 모음곡 3번 라장조’를 연주할 때는 화면 가득 초록 식물과 빛망울이 일렁였다. 자연의 흐름과 쳄발로의 흐름이 조화롭게 이어졌다.
비움홀 높은 천장까지 연주자를 감싸는 영상이 음악과 어우러졌다. ⓒ이선미
곡이 끝나고 쳄발로 연주자가 조율을 했다. 들어도 알지 못하는 음인데 연주자는 자신만이 아는 어떤 음을 위해 한참을 조율했다. 고요한 가운데 쳄발로 소리만 들릴 때 문득 이날 주제인 ‘평온’ 생각이 났다. 마음을 기울여 악기를 조율하는 순간처럼 ‘우리도 순간순간 뭔가를, 관계를, 해야 할 일들을 조율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 악기와 또 다른 악기의 합주를 위해서는 서로 맞춰가는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은 음악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크 악기로 듣는 바로크 음악이 깊어가는 계절과도 잘 어울렸다. ⓒ이선미
쳄발로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500여 곡이 넘는 하프시코드 작품을 만든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가장조, 작품 208’은 연주자들이 명상에 잠기며 성장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곡이라고 한다. 상처 입은 마음과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치유 음악으로도 많이 추천된다. 연주가 계속되고 무대의 영상에는 쌓인 낙엽 위로 어두운 낙엽이 쏟아져 내렸다. 소나타가 눈처럼 떨어졌다. 화면에서도 눈이 내렸다.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바로크 음악이 연주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면 몸은 힘들더라도 엔돌핀이 생기거나 카타르시스 덕분에 시원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은 보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데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도 많은 경우 도움이 되는 곡이다. 화면에는 가을 들판이 채워졌다. 억새 혹은 갈대가 누렇게 반짝였다.
비발디의 ‘체임버 협주곡 라단조’ 세 악장이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흘렀다. 화면 속 바다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발디의 ‘체임버 협주곡 라단조’ 세 악장이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흘렀다. 화면 속 바다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발디의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바다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어떻게 하면 웰에이징, 잘 나이 들 수 있을까요?”
서울시향 부지휘자 데이비드 리가 김창기 원장에게 물었다. 김 원장은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말 같아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선 이타심과 인내,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 유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데 웰에이징을 위한 관계는 따뜻한 인간성이 첫 번째 조건이다. 김원장은 잘 나이 든다는 건 먼저 손을 내밀고 오래 참는 일이라고 했다. 마음이 부대낄 때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할 수 있어야 현명한 어른이 된다고도 했다.
서울시향 부지휘자 데이비드 리가 김창기 원장에게 물었다. 김 원장은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말 같아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선 이타심과 인내,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 유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데 웰에이징을 위한 관계는 따뜻한 인간성이 첫 번째 조건이다. 김원장은 잘 나이 든다는 건 먼저 손을 내밀고 오래 참는 일이라고 했다. 마음이 부대낄 때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할 수 있어야 현명한 어른이 된다고도 했다.
연주 사이에 김창기 원장과 데이비드 리의 대담이 이어졌다. ⓒ이선미
“힘들고 마음이 불편할 때 들으면 좋을 음악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데이비드 리의 제안에 김원장이 소개해준 곡은 조동진의 ‘어떤날’이었다. 조동진은 쓸쓸한 날 벌판으로 나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보고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자고 노래한다. 실제로 고 조동진이 생전에 김 원장에게도 말했다고 한다. 벌판과 강변으로 나가서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우리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힘을 얻어 돌아온다고.
데이비드 리의 제안에 김원장이 소개해준 곡은 조동진의 ‘어떤날’이었다. 조동진은 쓸쓸한 날 벌판으로 나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보고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자고 노래한다. 실제로 고 조동진이 생전에 김 원장에게도 말했다고 한다. 벌판과 강변으로 나가서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우리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힘을 얻어 돌아온다고.
웰에이징 콘서트 ‘평온’이 끝난 후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전경 ⓒ이선미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마지막으로 가을밤 콘서트가 끝났다. 조동진이 노래한 벌판은 우리 마음에도, 우리 가정, 직장, 사회에도 있다. 그 벌판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어떤 날, 어떻게든 힘내시라고 서로 격려하며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결국 웰에이징은 조율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으로부터 평온을 일궈가는 길,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요구하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