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역사
금호동은 이제 서울의 중심으로 이해된다. 서울이 한강을 큰 갈래로 해 강북과 강남, 동서로 커지면서 지형적으로 금호동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강남이 경기도 광주군·양주군 등에 속해 있을 때 최남단은 용산이었다. 그중에서도 한남동과 옥수동, 금호동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서울의 남쪽을 이루었다. 금호동은 특히 한강북단의 커다란 구릉지대로, 강을 굽어보는 지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19세기 고산자 김정호의 한양 지도를 봐도 제일 남쪽은 역시 이 일대를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