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는 묘한 힘이 있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여러 가지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서 걷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시간을 되짚어 반성해 볼 수도 있고, 묘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걱정을 길 위에 내려놓고 올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큰 걱정일수록 멀리, 오래 걷게 된다.
이번 주에는 동대문구 힐링산책길 덕을 톡톡히 보았다. 동대문구는 지친 일상에 힐링이 필요한 서울시민을 위해 멋진 힐링산책길을 마련해주고 있다. ▲정릉천, 성북천과 청계천이 연결된 '홍릉두물길' ▲다양한 역사, 문화, 예술을 탐방할 수 있는 '청량가로수길' ▲중랑천의 꽃과 물길을 만끽할 수 있는 '장안벚꽃안길' ▲동대문구의 숲과 경치를 누릴 수 있는 '배봉두메(십리)길' ▲하늘이 숨겨 놓은 천장산을 걸을 수 있는 '천장하늘길'이 대표적인 동대문구 힐링산책길이다.
제일 먼저, '장안벚꽃안길'을 찾아 마음 깊이 위로 받았다.
장안벚꽃안길은 군자교에서 중랑교, 이화교까지 이어지는 중랑천 제방 위에 조성된 산책길이다. 초여름이라 벚꽃과 단풍은 없어도, 장안길은 짙은 초록과 깊게 드리운 그늘로 필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온 길처럼 푸근한 길이었다.
장안벚꽃안길은 제방길 답게 의자들이 대부분 중랑천을 향해 놓여 있다. 그 의자에 앉아 중랑천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과 텃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흐르는 물과 함께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분히 앉아 있다 보니, 정신없이 빠르게만 달려가던 삶의 속도가 조금씩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멍하니 물을 바라보며 일상의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인데, 복잡했던 삶이 저절로 차근차근 자리를 찾아가며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장안벚꽃안길은 자연스럽게 '배봉두메(십리)길'로 이어졌다.
배봉산은 전농동과 휘경동에 걸쳐 있는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산이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향해 절을 했다는 전설로, 배봉(拜峰)이라고 불리는 이 산에는 길이 4.5 km의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조성된 둘레길이 있다.
배봉산둘레길에는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희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동대문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준비한 희망의 메시지가 둘레길 내내 함께 했다.
처음에는 좋은 글귀라고만 생각되었는 데, 2시간 넘게 배봉산을 돌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메시지는 어느덧 가슴을 울려, 희망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찬 가슴으로 만난 배봉산 정상은 더욱 더 감동이었다.
'홍릉두물길'에는 역동적인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두물 혹은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만나 하나로 합쳐져서 흐르는 곳을 말한다. 정릉천과 성북천이 각각 청계천을 만나 하나가 되어 한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릉천, 성북천, 청계천을 각각 따로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서로가 합쳐져 멋지게 두물머리를 만들고, 한강으로 힘차게 흘러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던가. 청계천, 성북천, 정릉천을 덮었던 콘크리트를 걷어낸 지 10여 년. 그렇게 시민들과 호흡하며 다시 살아난 하천은 생명과 활력이 넘기는 공간이 되었다. 청계천 두물다리에 어째서 청혼의 벽이 있는 지, 새삼 이해가 되었다.
아직 필자에게는 두 개의 힐링산책길, '청량가로수길'과 '천장하늘길'이 남아 있다. 새로운 길에서 어떤 힐링을 얻을 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