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줬다면 개편된 전시는 서울에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김양균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장-
올해 20주년을 맞는 서울역사박물관이 더욱 새롭고 알찬 전시로 돌아왔다. 10년만에 새롭게 상설전시실을 개편하고 지난 6월 30일 다시 문을 열었다. 1394년 조선의 수도가 된 이래 600여 년 서울의 역사와 서울 사람 이야기로 탄탄하게 채워진 서울역사박물관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3년 간의 개편을 마치고 이번에 재개관한 상설전시관은 2·3·4관이다. 5관 도시모형영상관도 중앙스크린 및 좌우 벽면, 바닥 모형을 활용하여 ‘디지털 실감 영상실’로 조성,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김양균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장의 말처럼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현재 서울을 살아가는 ‘서울 사람’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점이다. 영상 콘텐츠를 대폭 늘린 전시관 곳곳에서는 쉬지 않고 영상이 움직이고 음성이 들려와 이를 실감케 한다.
1900년대로 돌아간 듯... ‘개화의 거리, 종로’ 디지털 전시 체험관
재개관한 2존 전시관에 들어서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25m 가량의 터널 양벽으로 1900년대 개화기 당시 종로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개화의 거리, 종로’ 디지털 영상 체험존이다. 몰입도를 확 높인 디지털 전시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디지털 체험존에는 근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앞으로 전철이 지나고 양복과 한복을 입을 사람들이 거리를 거닌다. 당시 아이들과 손인사를 하고 사진사와 군악대도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반응을 해준다. 손바닥을 터치해 전차에 탑승하거나 신문물을 찾아보는 인터랙션(상호작용) 기법까지 등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다.
벽면을 둘러싼 대형 영상을 보며 120년 전 종로거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체험형 전시공간 ‘개화의 거리, 종로’ ⓒ방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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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진연도병’, ‘딜쿠샤 태극기’ 등 800점의 새 유물 전시
서울역사박물관의 그간 축적된 성과를 담아 새롭게 선보인 800여 점의 유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1~5존으로 구성된 상설전시실은 서울의 주요 장소를 보여주는데, 이번 개편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자료가 대폭 추가됐다.
조선시대 건국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한양을 보여주는 ‘1존 조선시대의 서울’에서는 '1481 한양' 목각 지도부터 한양 최고의 명승지이자 중인 문화의 상실인 ‘서촌’, 전문직에 종사하던 중인들의 혼인 네트워크 등이 담긴 ‘중촌’ 이야기, 명나라 사람들이 살았던 ‘동촌’ 등 다양한 이야기가 새롭게 소개됐다.
개항으로 근대도시를 꿈꾸던 대한제국기를 전시한 2존 초입에는 1860년에 제작된 <곤여지도>가 전시돼 있다. 1674년 벨기에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서 간행한 목판본 세계지도가 조선에서 재판된 것인데, 평면으로 여겼던 조선시대의 세계관을 확장시켜 준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120년 전 조선 왕실의 마지막 궁중행사를 그린 병풍 <임인진연도병>도 이번 개편으로 처음 선보였다. 10폭의 그림을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국악원 2곳뿐이니 놓치지 말고 관람해 보자.
일제강점기 및 현재 서울의 역사 오롯이 담아
일제강점기의 서울을 소개한 3존은 더욱 다양한 자료를 추가해 1904년~1910년의 긴박했던 항일운동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탑골공원과 대한독립만세’ 영상을 볼 수 있는 코너가 신설됐고, 전국 도로의 이정표였던 도로원표와 일제강점기 주요 대중교통이었던 인력거도 최초로 전시됐다.
일제시대 도시개조 과정과 연합군 공습에 대비해 만든 공터에 세워진 세운상가 이야기도 흥미롭다. 특히 딜쿠샤에서 앨버트 W. 테일러와 함께 거주하던 김상언 주사의 유품인 ‘태극기’도 놓치지 말아야 할 유물 중 하나이다.
“켜켜이 쌓아온 서울의 역사가 현재 서울의 다양한 이해 관계를 해소하는 뿌리이자 이해의 장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김양균 전시과장의 말처럼 ‘4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1945년 해방 이후 강남 개발, 올림픽 개최 등 서울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변화를 이해하며 공감대를 넓힐 수 있도록 조성됐다.
특히 박물관 내 전형적인 1970년대 강남의 아파트 단지였던 ‘서초삼호아파트’의 주거 모습과 도심의 대표적인 뒷골목 중 식당 중 하나였던 ‘청일집’ 등을 실물로 만나며 고단했던 그 시절의 의미있는 쉼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동안,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미래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더 화려하게 돌아온 도시모형영상관
4존에서 서울의 주요 사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표를 따라가다 보면 바로 ‘5존 도시모형영상관’으로 이어진다. 서울을 1,500분의 1 크기로 축소 제작한 모형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3D 맵핑 영상과 서울의 자연을 담은 8분간의 180도 파노라마 영상을 30분 간격으로 상영해 한 편의 ‘서울’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쾌적해진 전시공간과 풍부한 볼거리와 함께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턱을 없애고 다소 복잡했던 동선도 깔끔하게 구성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역사를 품은 박물관에서 새것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곳곳에 마련된 벤치들은 잠시 쉬어가기에도 작품을 더욱 오랫동안 마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이 외에도 서울역사박물관은 20주년 기념 주간을 맞이해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본관을 비롯한 8개 분관에서 기념음악회, ‘명품도시 한양보물 100선’ 특별전과 전시 연계 체험 프로그램, 배리어프리 영화관, 헝가리 교류전, SNS 이벤트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20주년 기념 주간 행사가 끝나고도 전시와 연계한 SNS이벤트는 7월에 계속 이어진다. 관련 행사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또는 서울역사박물관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년 간 서울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한 서울역사박물관. 연간 150만 명이 찾은 만큼 많은 시민들이 가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편이 더욱 반갑다. 불과 두 달 전 이곳을 취재했던 필자도 새로운 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다양한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진행하고 9월부터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10년 만에 새롭게 탈바꿈한 상설전시실을 둘러보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서울살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서울역사박물관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 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7~8분
○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24-0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