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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 색다른 여행지, 청와대 속으로

  • 등록일 2022-07-12
  • 작성자 관리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를 모처럼의 휴일에 관람하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청와대는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내 사무실 밀집 지역의 북쪽에 위치한다. 도심의 번잡함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청와대 속으로 성큼 들어가 보자.

청와대를 향해 내딛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방주희
청와대를 향해 내딛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방주희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 ‘경복궁역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청와대 가요?” 하고 묻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을 보자 그제야 청와대에 가는 게 실감이 난다. 앗! 청와대라니 하는 설렘과 함께 청와대가 좀 더 가까이 느껴졌다. 정류장 두 곳을 지나 ‘효자동 정류장’에 이르렀고, 이윽고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를 지나자 꿈같은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청와대 주소다. 주소를 아는 것쯤은 초대한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어원을 살펴봤다. 청와대 주소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 ‘광화문 1번지’로 정해졌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부터 일본식 주소가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세종로 1번지’가 되었다. 관광버스로 온 어르신들을 포함한 남녀노소가 두근거리는 발걸음으로 영빈문을 통해 청와대로 들어섰다.

방문객이 영빈관 터의 기원을 파악하고 있다. ?방주희
방문객이 영빈관 터의 기원을 파악하고 있다. ⓒ방주희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진 영빈관의 터는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1893년(고종 30) 경농재를 짓고 팔도를 상징하여 그 앞을 8등분하여 황제께서 친히 농사를 지으며 각 도의 농형을 살피던 팔도배미였다. 이 자리에 청와대 영빈관을 지은 지 20년 후인 1998년 10월부터는 주변에 산재해 있던 노후된 건물들을 정비하기 시작, 2000년 6월에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때마침 같은 해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 회담이 평화통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민족의 염원을 담아, 옛 궁궐 정전 앞뜰에 삼도와 전 국토를 상징하는 8개 권역을 표시하여 새로운 마당 하나를 만들었다. 


영빈관 앞으로 대기 줄이 상당했다. 아마 첫 방문지라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 같았다.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형태의 영빈관은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빈 방문 시 공연과 만찬 등의 공식 행사 또는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로도 사용됐다. 청와대의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이곳 영빈관의 줄이 절반 이상은 줄어있다고 안내 직원이 팁을 덧붙인다.

좌측은 영빈관을 관람하기 위한 줄이며, 우측은 대정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방주희
좌측은 영빈관을 관람하기 위한 줄이며, 우측은 대정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방주희
첫 남북정상회담 기념 식수가 영빈관 앞에 위치해있다. ?방주희
첫 남북정상회담 기념 식수가 영빈관 앞에 위치해있다. 방주희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곳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사실 어느 곳을 담아도 푸르름을 한껏 머금은 나무들이 절경을 이룬다. 역대 대통령들이 심은 나무 등 120여 종의 나무가 심어져있어 숲 속이 따로 없다. 서울에 이렇게 녹지공간이 잘 갖춰졌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면서 두 눈에 가득 담는 녹음은 즐거움 그 자체다.


덧신을 신고 내부로 들어갔다. 대접견실에 들어서니 정면 중앙에 봉황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월계수, 그리고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둥근 천장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게 화려함을 더했다. 

국빈만찬 테이블을 일부 재현하였다. ?방주희
국빈만찬 테이블을 일부 재현하였다. 방주희
대정원 길목을 길게 늘어선 줄이 가득 메우고 있다. ?방주희
대정원 길목을 길게 늘어선 줄이 가득 메우고 있다. 방주희

이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본관이 있는 대정원이었다. 걷는 내내 숲속에 와 있는 듯 청량했다. 이곳에서는 문 하나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무늬와 무궁화 앞도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로 인기 만점이었다.


구불구불 신비로운 기운의 소나무를 따라 대정원에 들어서자 그림 같은 본관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푸른 기와지붕이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북악산의 정남향에 자리 잡고 있는 본관은 전통 목조 구조의 궁궐 건축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팔작지붕을 올려 15만여 개의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낮에도 이렇게 영롱한데, 밤에 보는 본관의 모습은 낮과는 다른 매력을 뿜어내리라. 

푸른 기와의 청와대. 좌우에는 단층의 별채가 그림같이 펼쳐졌다. ?방주희
푸른 기와의 청와대. 좌우에는 단층의 별채가 그림같이 펼쳐졌다. 방주희
접이식 문 사이로 충무실 내부가 보인다. ?방주희
접이식 문 사이로 충무실 내부가 보인다. 방주희

본관은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경무대는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다.


청와대 내부는 그 외부와 어울리는 색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청와대 마크가 새겨진 유모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출입문 앞의 벽변 아래쪽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머릿돌’ 글씨가 선명하다.


1층 로비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붉은 카펫을 따라 걷자 동쪽 별채 충무실(忠武室)이 나타났다.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다음은 인왕실(仁王室)이다. 인왕실은 청와대 서쪽 산의 이름을 땄다. 본관의 주요 공간들과 달리 이곳은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간담회나 오찬과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그리고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활용한 공간이다.

유백색의 벽과 샹들리에가 서양식 분위기를 연출한다. ?방주희
유백색의 벽과 샹들리에가 서양식 분위기를 연출한다. 방주희
정갈한 분위기의 대통령 집무실 전경 ?방주희
정갈한 분위기의 대통령 집무실 전경 방주희

2층 계단을 올라가자 대통령 집무실이 펼쳐졌다. TV나 언론매체를 통해 보던 공식 석상의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이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대통령 집무실에 버금갈 정도로 길게 늘어선 줄과 함께 무궁화실이 놓였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다.


이쯤에서 쉴 때가 된 것인가? 관람객 휴게실과 벤치 주변으로 구 본관이 있던 수궁(守宮) 터가 나타났다. 앞서 말했듯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곳은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고종 5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섰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의 수궁 터는 당시 왕궁을 지키는 수궁의 자리였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이 수궁 터에 총독의 관사를 지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다. 1991년 청와대 본관을 새롭게 건축한 후 1993년 11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그 건물을 철거하고 수궁 터로 복원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로문이 청와대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방주희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로문이 청와대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방주희

불로문(不老門)도 눈여겨볼 만하다. 블로문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을 본떠 만는 문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덕궁 연경당 입구에 세워진 돌문은 ㄷ자 모양의 단순한 형태로 돌문에 전서체로 불로문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곳 불로문은 소정원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청와대에서 마주해서인지 이 문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구 본관이 있던 수궁(守宮) 터를 지나 관저로 이르는 고불고불한 길목에서 만난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관저에 닿았다. 청와대 시설물 중 가장 관심이 갔던 공간이 관저이기도 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건립됐다. 인수문(仁壽門)을 통과하는데, 다른 곳과 달리 줄을 서지 않고 곧장 들어갈 수 있었다.

청와대 관저가 있는 인수문을 통과하고 있다. ?방주희
청와대 관저가 있는 인수문을 통과하고 있다. 방주희
인수문을 지키고 있는 청원경찰과의 사진 찍기는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방주희
인수문을 지키고 있는 청원경찰과의 사진 찍기는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방주희

쉽게 입장한 것도 감사한데, 진풍경이 펼쳐졌다. 방문객들이 인수문을 지키고 있는 청원경찰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청원경찰은 대통령이 없는 이곳 청와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를 지나자 생활공간인 본채가 등장했다. 앞마당에는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뜰과 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은 전통한옥의 분위기에 맞는 삼문으로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八作) 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통유리가 멋스러운 별채. 뒤편으로 본채가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한다. ?방주희
통유리가 멋스러운 별채. 뒤편으로 본채가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한다. 방주희
돌담길을 지나 사랑채가 있다. ?방주희
돌담길을 지나 사랑채가 있다. 방주희

이어서 녹지원을 지났다.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가 있는 곳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식목일 기념 식수를 만날 수 있었다. 


녹지원은 조선시대에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으로 문·무의 과거를 보는 장소로 이용됐으며, 이후 정원이 되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의 부지로 사용됐다. 야외행사장으로도 이용됐으며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이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150여 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드리 반송과 소나무 숲의 상춘재(常春齋)를 멀리서 보고 청와대를 나왔다. 

푸르름을 한껏 뽐내는 녹지원의 풍경 ?방주희
푸르름을 한껏 뽐내는 녹지원의 풍경 방주희

청와대 경내에서는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오운정 등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또한 7월 2일부터는 북악산은 춘추관, 칠궁 뒷길과 함께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 등산로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74년 만에 전면 개방된 청와대. 앞으로 잘 가꾸어 역사 문화공간으로 국민 곁에 깊숙이 자리하기를 희망해본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청와대의 미래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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