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꽤 쏟아지던 지난 7월 13일, 50년 만에 새 단장을 하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삼청각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돌아서니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북악산의 한양도성과 숙정문이 물안개에 숨어 있고, 버섯 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끄는 일화당 주변을 한참을 서서 감상했다. 힘들게 올라왔지만 풍광도 빗소리도 좋았다. 몽환적인 자연이 감싸 안은 전경에 넋을 놓았다.
7.4공동성명, 요정 정치와 권력, 6채 한옥 건물의 이야기, 현판글씨, 주련글, 전통혼례, 공연, 음식, 카페 다원의 테라스, 유하정 산책길…. 오늘, 스토리가 많은 삼청각과 멋진 데이트를 해야겠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우중의 일화당 모습 ⓒ김해숙
공연장과 한식당, 카페를 갖춘 '일화당'
일화당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전통혼례나 야외놀이를 할 수 있는 잘 가꿔진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삼청각에는 6채의 한옥 건물이 있다. 일화당, 청천당, 천추당, 취한당, 동백헌, 유하정이다. 일화당이 본채이며 공연장과 한식당, 카페 다원 등이 자리잡은 연면적 970평의 대궐보다 큰 건물이다. 주차장 쪽에서 오면 1층이지만 앞에서 보면 콘크리트 4층 건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을 받고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급히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콘크리트 방식의 건축을 좋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어 앞쪽에서 보면 웅장한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탈진 언덕에 지어진 집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본채인 일화당과 초록의 잔디가 있는 놀이마당 ⓒ김해숙
나무 숲에 드리워진 삼청각은 아래쪽에서는 삼청각의 각 부분들만 보여지는데, 정작 일화당 2층의 찻집인 다원 테라스에서는 모든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나무 숲 사이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북악산 자락의 산과 물이 맑고 인심이 좋아 산청, 수청, 인청의 삼청각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서울 시내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 삼청동, 인왕동의 순서라고 한다. 필자 개인 의견으로는 청와대 뒷산에서의 정경이 아직도 어른거리는 걸 보면 인왕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가도 조금 떨어진 길상사의 경치 또한 매우 좋았던 기억 또한 떠오르니 삼청이나 인왕이나 경치 좋기로는 서울의 으뜸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화당의 전면 모습. 맨 위의 테라스가 찻집 다원이다. ⓒ김해숙
잔디를 살짝 즈려 밟고 계단 앞에 서면 독특한 현판 ‘일화당’이 들어온다. 가운데 '화'자가 화할 '화'자의 고어라고 소개된 곳이 있으나 한자 사전을 찾아보면 풍류 '화', 조화될 '화'로 나와 있다. '하나로 조화하는' 혹은 '풍류가 있는' 일화당의 뜻이 아닐까? 유명 서예가 심당 김제인(1913~2005) 선생의 전서 글씨다.
현판 글씨 아래 각 기둥들에 길게 쓰여져 있는 글씨는 '주련'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초정 권창륜 선생의 글이다. 초정 선생은 경북 예천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서예계의 대가이시다. 현판 글씨도 멋지지만 6채의 한옥 기둥의 주련 글만 모아도 작품집이 될 듯싶다.
유은선 단장이 이끄는 일화정담 공연 모습 ⓒ김해숙
일화당의 150석 규모의 공연장은 결혼식과 공연, 국제회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에 기획 상설공연 <일화정담>이 열리는데 판소리, 전통무용, 국악앙상블 연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7월까지의 기획공연은 국악앙상블 '청아랑'의 공연이었다. 청아랑은 한국의 전통음악과 창작음악, 퓨전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창작한다. 누에나비의 푸른 촉수와 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눈썹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의미하는 청아랑의 마지막 공연 ‘그 저녁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의 대금과 춤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에 아롱져 있다. 창아랑을 이끄는 유은선 단장의 곡과 악기에 관한 설명, 젊은 국익인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연주가 너무 짧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천추당, 청천당, 청천당 잔디마당, 삼청각 대표 모습 ⓒ김해숙
봄의 집 '청천당'과 가을의 집 '천추당'
“귓전 울리는 맑은 여울 지나가고, 눈에 가득 푸른 산 우직스레 서 있다.” '청천당'을 표현하는 이 문구처럼 봄의 물소리가 들리는 집이라는 뜻이다. 소규모 웨딩이 진행되며 독립된 앞마당이 있어 식사와 야외 파티를 겸할 수 있다.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예쁜 잔디밭과 길다란 한옥의 청천당을 들어갈 수 있고 내부에는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행사를 할 수 있게 시설이 되어 있다. 삼청각의 별채 건물 어느 곳에서나 식사와 함께 맞춤식 예식이나 행사를 예약할 수 있다.
“긴 긴날 거문고 퉁기며 옛 악보 뒤적이고/ 아늑한 창가에서 종이 갈라 새 글을 쓴다.” 영원하고 깊은 가을 집을 의미하는 '천추당'은 앞에서도 뒤에서도 아름다운 곳이다. 일화당 앞쪽 정원에서 바라보면 숲 속의 한옥이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비취빛 서늘함이 깃든 '취한당'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성북구립미술관 소장품 및 소장작가 작품전인 <소박한 축전>이 열리고 있다.
동백헌의 전경과 안에서 바라보는 전경 ⓒ김해숙
전통찻집 '동백헌', 아름다운 정자 '유하정', 구름이 드리운 쉼터 '편운정'
“세월은 술잔 속에 잡아 가두고 강산은 바람 벽에 옮겨 놓았다.” 오밀조밀하고 예쁜 한국의 정원을 가진 '동백헌'은 전통찻집이다. 멋진 도자기와 도공예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면 정원의 풍경이 한눈에 가득 들어와 절로 힐링이 되는 정경을 갖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무궁화가 새겨진 문양의 아름다운 기와를 볼 수 있는데 50년 전 만들었던 무궁화 기와 문양은 더 이상 생산이 안 된다고 한다.
삼청각은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유하정'의 아름다운 장소는 말 할 것도 없다. 그윽한 그늘이 깃든 정자인 유하정에서는 행사는 물론 한국 전통음식와 와인강좌가 열리기도 한다. 유하정의 뒤쪽에는 사색의 공간인 '편운정'이 있다. 구름이 드리운 쉼터라는 뜻이며 앞에는 계곡이 있다. 그곳을 건너면 북악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폭우로 물이 많아져 건너지 못했다.
유하정과 현판, 유하정 계단을 오르는 길은 드라마틱하다. ⓒ김해숙
유하정에 놓인 3m 60cm의 24인용 테이블 ⓒ김해숙
힐튼호텔에서 30년 간을 장인 정신으로 일하던 하채헌 대표는 삼청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명물 하나를 들고 왔다. 힐튼호텔에 있던 3m 60cm의 원형 테이블이다. 무려 24명이 앉아서 식사나 회의를 할 수 있는 테이블로 힐튼에서의 멋진 경험들을 유하정에서 펼쳐 나갈 예정이다. 테이블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하대표의 각오가 느껴졌다.
삼청각 하채헌 대표 ⓒ김해숙
힐튼호텔에서 30년 간 갈고 닦은 노하우와 서비스로 삼청각을 최고의 행사와 놀이 장소로 만들갰다는 하채헌 대표는 삼청각만의 차별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호텔 연회장의 경우는 빌딩 안에 한정되어 있지만, 삼청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장소입니다. 2월에 처음 왔을 때 눈 속에 쌓인 모습이 신비로웠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날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모습 또한 멋집니다. 가을에는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호텔하고는 다른 자연 풍관의 아름다움이 고객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물론 삼청각에는 최고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장인정신을 가진 셰프의 요리는 최고의 맛입니다. 자연 속에서 치뤄지는 하나하나의 행사들이 최고의 기억이 될 것이고, 호텔 서비스를 능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삼청각 표지판에는 건물 표시와 간략한 역사 이야기가 적혀 있다. ⓒ김해숙
덧붙여 하대표는 "기획자들과 미팅을 통해 좋은 공연을 유치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며,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성북구청과 버스정류장 만들기도 협의 중입니다. 청와대 등과 연계한 관광투어버스도 운영 계획이고, 외국인을 포함한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밴드, 실험음악, 공연 등)을 위해 일화당 뒤 놀이마당을 내어줄 것이며, 요리나 전통택견 등 다양한 놀이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청각 아카데미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이야기한다.
하채헌 대표의 구상대로 삼청각이 시민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아름다운 경치와 문화, 흥겨운 공연과 맛있는 음식까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새롭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삼청각이 펼쳐나갈 문화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삼청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세히 알고 보면 낭만이 소름 돋는 곳이다."
삼청각 일화당의 야경. 밤이 되면 또 다른 운치를 전해준다. ⓒ김해숙
삼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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