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단절된 동궐과 종묘
사직과 함께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사당이다. 조선은 이토록 중요한 공간을 동궐(창덕궁과 창경궁) 바로 옆에 조성했다. 왕들은 부모형제인 이들을 찾아 숲을 거닐었을 것이다.
500년 시간이 이어지던 이러한 길이 일제에 의해 단절됐다. 돈암동 일대에 주거지를 개발한 일본은 1932년 동궐과 종묘의 지맥을 자르고 광화문에서 돈화문을 거쳐 현재 서울대병원으로 이어지는 ‘종묘관통도로’(율곡로)를 만들었다.
서울시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시작해 창경궁과 종묘의 경계였던 담장을 만들고, 담장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궁궐담장길’도 조성했다. 2011년 5월, 사업을 시작한 이후 12년 만의 결실이다. 필자는 원남동사거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방된 길에 올라갔다. 궁궐담장길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된다고 한다.
고즈넉한 토요일 오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도 보였지만 일부러 찾아온 시민들도 많았다. 이중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일곱 살 어린이는 성동구에서 왔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지난해 복원 공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된 후 개장이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는 어떤 길인지 알까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의미를 다 알지 못하지만 원래 있었던 곳을 일본이 길을 내면서 끊어 놓았다가 이어진 거라는 건 알아요.”라며,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게 무척 반갑다며 웃었다.
시민들은 북신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왕들이 창경궁에서 종묘를 드나들던 이 문 역시 도로를 만들 때 없어졌는데 문헌을 통해 최대한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묘와 창경궁의 관람 형태 등이 달라 개방에 있어서 문화재청과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어 문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목동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뉴스를 보고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궁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궁궐에 가시려고요?”, “그럼요. 오랜만에 나왔는데 가봐야죠. 그런데 길이 다 막혀있는 거 같네요?”, “아니에요. 쭉 가시다가 공원으로 내려가시면 창덕궁이 나와요. 월대 복원 공사도 끝나서 창덕궁이 한결 환해졌어요.”
복원된 종묘 담장에는 조금씩 다른 색깔의 돌이 있었다. 4만 5,000여 개의 돌로 약 500미터 길이의 담장을 쌓았는데, 좀 더 진한 돌은 복원 과정에서 출토된 옛 담장의 석재로 약 9,000여 개 정도가 쓰였다고 한다. 담장을 수리한 연도를 표시한 새김석도 보였다. '庚午'(경오)년, 아마도 1870년 담장을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총 길이 300m정도인 ‘궁궐담장길’은 그리 길지 않다. 종묘와 창경궁 사이로 조성한 산책로에는 황토가 원료인 콘크리트가 깔리고 양옆에는 묘목들이 식재됐다. 창경궁과 창덕궁에서 자주 본 귀룽나무, 미선나무, 고광나무와 매화를 비롯해 참나무와 소나무, 국수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 수종 760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궁궐담장길로 올라가는 네 가지 방법
현재 담장길로 직접 올라가는 길은 세 군데다. 창덕궁에서는 단봉문을 지나 가을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운 작은 공원으로 올라가면 된다. 경사가 완만해 유모차나 휠체어도 오를 수 있고, 지팡이가 필요한 어르신들도 충분히 오르내릴만하다.
서순라길에서는 계단으로 오르게 된다. 종묘 담장 옆으로 몇 개의 계단이 놓였는데 벌써 인증샷을 찍는 시민들이 많았다. 종묘 정문에서 서순라길을 따라 오면 이 작은 공원에 닿는다.
그리고 원남동로터리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누구나 궁궐담장길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사실 가장 기다렸던 건 창경궁에서 곧장 이어지는 길이었다. 예전에는 돌담길을 따라 그냥 걸으면 창덕궁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터널을 지나 단봉문 옆 공원까지 가야 한다.
필자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 복원 사업이 완료되기를 오래 기다려온 만큼 약간의 쉬움도 남았다. 서순라길이나 원남동 쪽으로 이어지듯 창경궁 돌담 쪽으로도 곧장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원한 북신문도 아직 개방되지 못하고 잠겨있는 점도 아쉽다. 개방에 대해 문화재청과 협의할 지점이 남았다고 하니 가능한 빨리 조율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