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곳곳이 끊기고 훼손됐다. 그러다 보니 순성에 나섰다가 성벽이 끊겨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는 곳도 있다. 지난 8월 성곽이 훼손돼 성벽이 남아 있지 않은 이런 단절된 구간의 안내판이 정비됐다.
이번에 정비된 곳은 혜화문에서 서울과학고등학교, 낙산 정상,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 숭례문에서 돈의문 터에 이르는 총 5.2㎞로 시민들의 눈높이에 안내판이 부착되고 디자인과 문구를 통일해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개선됐다.
이번 안내판 개선으로 인해 방향 표시가 더 정확해졌다. 방향이 바뀌는 구간에는 안내 표지판을 더 촘촘하게 늘려 정보를 제공한다. 길을 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방향이다. 어느 길로 접어들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기자는 새롭게 정비된 한양도성에 기대감을 갖고 달라진 구간을 걸어보았다.
백악구간 와룡공원에서 내려와 혜화문에 이르는 골목길과 낙산구간은 사실 별로 어렵지 않다. 시선이 닿는 곳에 성곽이 이어지거나 어느 정도 이정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 설치한 표지들이 확실히 눈에 잘 띄었다.
흥인지문에서 서울N타워 방향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 구간과 숭례문에서 돈의문 터는 뚝 끊겨버리는 순성길 앞에서 당황스러울 수 있는 구간이었다. 낙산을 내려와 흥인지문을 지나면 성곽의 자취가 전혀 없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쪽으로 향하자 큰 길에 이정표가 나타났다.
DDP에는 일본이 경성운동장을 지으며 훼손한 성벽 일부와 이간수문 등이 발굴돼 남아 있다. 지난 2007년 올림픽 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운영되던 곳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이간수문과 치성, 일부 건물 유구가 발굴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옮겨졌다.
DDP 뒷길을 따라 가로등에 한양도성 안내가 이어졌다. 잘만 보고 걸으면 광희문을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광희문에서 서울N타워 방향을 찾는 일이다.
장충동 주택가는 1930년대에 일본이 문화주택 단지를 만들며 도성을 훼손했고, 그 이후에도 성벽이 신축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이 구간에는 성벽이 골목 안 깊이 들어 앉아 있다.
숭례문에서 돈의문 터까지
남산에서 내려와 숭례문을 지나면 또 멈칫하게 된다. 사통팔달 이 도로에서 성곽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 것인가. 일본은 1907년 교통 불편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성벽을 훼손했다. 도로를 넓히고 전차 선로를 개설하며 양쪽 성벽을 헐어 결국 숭례문은 도시의 섬처럼 남게 되었다. 이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숭례문 주변에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성벽은 조금씩 사라졌다.
일단 돈의문 방향으로 길을 건넜다. 대한상공회의소를 지나자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남아 있었다. 일부 남아 있던 구간을 재현해 2005년 복원 정비한 흔적이었다. 옛 성돌 위에 쌓은 높이 3m 성벽이 200m정도 이어졌다. 숭례문 구간에서는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비로소 ‘순성길 돈의문 터’라는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의 흔적을 따라 보랏빛 맥문동꽃이 핀 길을 걸었다. 길 끝에 ‘소의문 터’ 표지석이 나타났다.
배재어린이공원을 지나 정동교회 모퉁이를 돌았다. 우리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는 정동교회는 ‘광화문 연가’에 등장하는 ‘언덕 밑 정동길…눈덮인 조그만 교회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길 건너에는 대한제국 정궁, 경운궁(덕수궁)이 자리하고 있다.
정동길을 걸어도 성곽은 보이지 않는다. 성곽은 안쪽에 숨어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멋진 정동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돈의문 마을이 길 건너로 보인다. 그 지점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이라는 표지가 기다리고 섰다. 비로소 그곳에서 성곽의 아스라한 자취를 만날 수 있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것은 서울의 역사를 걷는 일이다. 우리 역사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걷기에 더 없이 좋은 가을날, 정비된 이정표 따라 길 잃을 걱정 없이 멋진 순성길에 나서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