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신촌 연세로에서는 길거리 축제가 한창이다. ⓒ윤혜숙
10월 한 달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신촌 연세로에서도 축제가 한창이다. 저녁 늦은 시각에도 길거리 공연이 열리고 있어 종종걸음으로 가던 행인의 발길을 붙든다.
연세로에 인접한 창천문화공원의 신촌, 파랑고래에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행사가 진행 중이다. 영화 관람과 함께 영화 평론가와 영화의 뒷이야기를 나누는 신촌시네마톡이다.
신촌, 파랑고래에서 '신촌시네마톡'이 진행 중이다. ⓒ윤혜숙
신촌, 파랑고래는 대학가 신촌 지역에 세워진 서대문구 공공문화 도시재생 앵커시설이다. 대학생·청년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문화적 삶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기자는 지역 주민인 만큼 신촌, 파랑고래에서 개최하는 프로그램 및 행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월에 '신촌시네마톡'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신촌, 파랑고래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신촌, 파랑고래
이번 주제는 '왕가위라는 장르'다. 홍콩 출신의 왕가위 감독은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한다. 프로그램은 그가 연출한 영화 중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4편으로 구성하여 10월에 2회, 11월에 2회 상영한다.
1990년대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에 기자는 홍콩영화를 거의 관람하지 않았다. 총칼이 나오고 피 튀기는 범죄영화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왕가위라는 장르'로 묶인 영화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중경삼림>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첫 번째 영화 <중경삼림>을 신촌, 파랑고래 옥상의 '하늘 오아시스'에서 관람했다. ⓒ윤혜숙
관객 중 홍콩관광청 초대로 오게 되었다는 연희진 씨는 예전에 봤던 영화지만 또 봐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저는 홍콩영화의 색감을 선호해요. 제가 94년생이어서 당시 개봉된 홍콩영화를 찾아서 보다가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그러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매료되어서 전부 찾아서 봤습니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감각적인 색채와 역동적인 촬영기법이 독특하다. ⓒ윤혜숙
<중경삼림>에는 1994년 홍콩을 배경으로 2편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1편은 중경빌딩을 소재로 홍콩의 밤을 담고 있고, 2편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소재로 홍콩의 낮을 담고 있다.
2편의 에피소드가 별개이지만 이를 연결해주는 장치가 있다. 남자 주인공들이 경찰이면서 연인에게 실연 당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2편의 에피소드가 달라도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총 4편의 영화를 순차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윤혜숙
영화는 1995년 5월에 개봉한 영화를 리마스터링해서 2022년 4월에 재개봉한 버전이다. 리마스터링(Remasteirng)은 이전에 존재하던 기록본의 화질이나 음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뜻한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색채와 역동적인 촬영기법으로 홍콩의 밤과 낮을 담아낸 영화에 MZ세대도 열광하는 것 같다. 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관객들은 모두 청년들인 듯했다.
하늘 오아시스에 입장할 때에 직원이 무릎담요와 핫팩을 나눠주었다. ⓒ윤혜숙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신촌, 파랑고래의 옥상, '하늘 오아시스'였다. 관객들을 위해 입장할 때 무릎담요와 핫팩을 나눠주고 차와 간식도 제공됐다.
오후 7시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공기가 제법 차갑지만 그래도 가을의 상쾌한 기분에 견딜 만했다. 주변이 점점 어둑해져도 밤하늘은 유난히 푸르러 보인다. 야외에서 하는 길거리 공연은 여러 번 관람했지만 야외에서 즐기는 영화는 어떨까?
영화를 관람한 뒤 주성철 영화 평론가가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윤혜숙
영화가 끝난 뒤 주성철 평론가가 영화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주성철 평론가는 영화의 배경이었던 홍콩을 직접 방문해서 영화를 촬영했던 곳을 다녀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뒷이야기를 왕가위 감독에게 듣는 듯 실감 나게 들려줬다.
왕가위 감독은 영화 <동사서독>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중경삼림>을 제작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은 정해진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따르기보다 자신이 꽂히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유동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촬영이 상당히 지연되어 영화 제작비가 고갈될 때가 많다고 한다.
3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왕가위 작품의 스냅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윤혜숙
10월 12일 <중경삼림>에 이어 19일 <타락천사>를 관람했다. 기온이 내려가서 이번엔 신촌, 파랑고래 3층의 꿈이룸홀에 객석이 마련되었다. <타락천사>는 <중경삼림>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편 <중경삼림>과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촌시네마톡: 왕가위라는 장르>는 11월 2일 <해피투게더>, 9일 <화양연화> 상영이 남아 있다. 작품 당 선착순 30명만 관람 가능하니 관심이 있다면 신청을 서두르자!
<신촌시네마톡: 왕가위라는 장르>
○ 일시: 2022. 10. 12.(수) ~ 11. 9.(수) 매주 수요일 19:00
○ 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나길 19 신촌, 파랑고래
○ 교통: 지하철 2호선 신촌역 1·2번 출구에서 258m
○ 문의: 02-337-8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