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요셉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김은주
서울로7017이 조성되고 난 후 서울의 만리동이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서울로7017의 17개 진입로를 이용해 퇴계로, 백범광장, 만리동 등 서울역 일대 좁은 골목길까지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만리동 길은 늘 새로운 장면과 조우하게 해줬다. 늦가을, 만리재길 산책을 만리동 광장에서 시작해 보았다.
성요셉아파트와 중림창고는 서로 맞은 편에 있다ⓒ김은주
이번 만리동 산책의 콘셉트는 옛 것이 전하는 진한 향수와 새로운 것이 주는 설레임을 비교해 느껴보는 것으로 잡았다. 만리동을 더욱 만리동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성요셉아파트와 약현성당 이다.
성요셉아파트는 옅은 분홍색 외관으로 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로 1970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주거공간이다. 성요셉아파트라고 써진 글귀조차도 멋진 감성으로 다가온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휘어진 형태로 건축된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68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길게 한 동으로 되어 있는 복도식 아파트이며 1층엔 상가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가 오래된 만큼 상가 역시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운영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게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창고부지로 사용된 곳을 도시재생사업으로 탈바꿈한 곳이 중림창고다ⓒ김은주
여기서울,149쪽은 서울의 도시재생 독립책방이다ⓒ김은주
성요셉아파트 맞은 편에는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으로 만들어진 중림창고가 있다. 중림동에 만들어져 중림창고라 이름 지어진 이곳은 40년 동안 사용된 창고부지를 재활용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시킨 의미 있는 곳이다.
현재는 도시재생 독립책방인 여기서울, 149쪽과 수선집이 있다. 여기서울, 149쪽에서는 편안하게 책을 보며 구매할 수 있는데, 방문했을 당시 마침 비에 젖은 책들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 싼 값에 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약현성당은 성요셉아파트 뒷편에 있다ⓒ김은주
성요셉 아파트의 뒤쪽에는 중림동 약현성당이 위치해 있다. 약현성당은 사적 제252호로 현존하는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물이다.
무려 1892년에 설계된 이 성당은 만리동 입구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곳에 있는 약현고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고딕 건축에 뾰족한 아치와 종탑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약현성당과 함께 서소문순교성지전시관도 관람할 수 있다.
약현성당은 결혼식이 많이 열리는 곳이다ⓒ김은주
보행자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약현성당 전망대도 있다. 이곳에서는 숭례문이 한 눈에 보여 사진을 찍기에 좋다. 성요셉 아파트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과거에는 약현성당의 신자나 신부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성요셉아파트는 실제로 약현성당의 주차장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가깝게 자리하고 있었다. 약현성당의 길 건너편에는 공사 중인 거대한 오피스텔이 높게 올라가는 모습이 오랜 세월의 성요셉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만리재길은 핫플레이스로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김은주
좁은 만리재길을 따라 맛집과 카페들이 줄 지어 들어서 있다 ⓒ김은주
약현성당을 뒤로 하고 요즘 떠오르는 서울의 샹젤리제 거리라 불리우는 만리재길을 찾았다. 만리재길은 분위기 좋은 식당과 와인바, 커피숍 등이 있어 주말 데이트 장소로, 평일 회식 장소로 많이 애용되는 곳이다. 한적한 골목길에 이국적인 외관의 모습을 보이는 가게들이 모여 상권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서울의 산책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
특히 만리재길은 서울로7017을 통해 접근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좁은 골목길의 만리재길을 즐기고 나서 탁 트인 서울로7017을 따라 걷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밤의 만리재길은 낮과는 또 다른 감성이 느껴지는 곳으로 변신한다ⓒ김은주
낮에는 낮대로 만리재길은 서울시민의 산책길이 되어 준다. 밤이 되면 만리재길은 새로운 분위기로 옷을 갈아 입는다. 알록달록한 조명과 이국적인 감성 물씬 풍기는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맛있는 음식 냄새, 손님들이 두런 두런 나누는 흥겨운 이야기 소리가 따뜻한 조도와 어우러져 저절로 발걸음이 안으로 향하게 된다.
도킹서울은 구 서울역 주차 램프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김은주
만리재길에서 즐겼다면 만리동 산책길의 마지막 코스인 서울로7017의 도킹서울로 향하자. 따끈따끈한 신상인 도킹서울은 구 서울역의 주차장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곳을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도킹이란 말의 뜻은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이 결합해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킹서울 역시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들이 접속해 색다른 미학을 선사하고 있다.
걷다 보면 닿을 듯 말 듯 연결되지 않는 공간에서 방향을 상실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되고 그 착각이 현실이 될 즈음에는 놀라운 느낌을 부여하는 예술 작품과 조우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나만의 궤도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작품과 공간을 관객이 마음껏 누리고 즐기며 서로 다른 도킹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도킹서울에서 김주현 작가의 작품 '생명의 그물-아치'를 만날 수 있다 ⓒ김은주
도킹서울에서는 ‘그는 둥글게 집을 돌아갔다’, ‘관측지점’, ‘깊은 표면’, ‘나의 우주색’, ‘생명의 그물-아치’, 서울 램프 시간 박물관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메타버스(현장에 비치된 리플렛 상에 이쓴 QR코드로 접속)로도 즐길 수 있다. 도킹서울이 아니었다면 이곳의 존재를 오래도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20년 동안 굳게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던 시간의 두께가 내포하는 의미와 가치에 충만하게 빠져본 도킹서울에서 예술과 접속하며 서울을 관망하는 자세를 가져본 시간은 꽤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서울로7017에서 도킹서울을 만날 수 있다ⓒ김은주
만리동을 산책하면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멋진 공간을 연출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서울의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보물을 발견하듯 떠난 산책길에서 낡은 것이 주는 깊이 있는 편안함과 새로운 것이 전하는 신선한 감흥에 한껏 빠져든 시간이었다. 걷기 좋은 서울 만리동에서 늦가을 만추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