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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산실, 북한산 자락 '봉황각'을 아시나요?

  • 등록일 2023-02-27
  • 작성자 관리자

봉황각

봉황각은 천도교 제3세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지은 곳이다. ⓒ김수정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천도교 제3세 교주를 지냈던 의암 손병희. 1910년 일본이 우

리나라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자, 10년 안에 나라를 찾겠다며 1912년 봉황각을 짓고 독립을 준비했다. 봉황각이

 있는 곳은 당시 깊은 산중이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북한산 자락 아래 강북구 우

이동이다.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 맞은편에 봉황각이 있다. ⓒ김수정

 

 

봉황각을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에서 하차했다. 2번 출구로 나와 오르막길을 오르는

데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북한산 탐방객들이다. 음식점과 카페가 늘어선 길을 걷다 보

면 우이동 만남의광장이 나온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가 보이고, 바로 길 건너

가 봉황각이다. 

 

 

별관

봉황각 앞 별관에서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이 어린이 운동을 시작했으며, 월간지 개벽이 발행됐다. ⓒ김수정

 

 

입구에서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은 별관이다. 원래 종로구 경운동 88번지에 1921년에 지어진 ‘천도교중앙총부’

건물로,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3.1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웠던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손병희의 사

위였던 방정환이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잡지 ‘개벽’이 발행

된 곳이다.

 

 

현판

봉황각 현판은 일제강점기 당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오세창이 썼다. ⓒ김수정

 

 

별관을 돌아 뒤로 가면 보이는 한옥이 ‘봉황각’이다. ‘봉황이 깃들어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봉황과 같은 큰 인물

을 길러내겠다는 의암 선생의 뜻이 들어 있다.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일제강점기 당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였던 오세창이 썼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키워 낸 곳으로 ‘의창수도원’으로도 부른

다. 3.1운동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 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됐다.

 

 

내부

봉황각에서 배출한 483명의 천도교 지도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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