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은 2045년까지 장장 55년 동안 이루어지는 긴 역사의 여정이다. 현재 광화
문 앞은 경복궁 중심축의 완성이라 할 월대 복원을 위한 사전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발굴
조사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행사가 지난 3월 16일~18일까지 열렸다. ☞[관련기사] 광화
문 앞 전차철로 발굴 현장 공개…8일부터 선착순 접수
기자도 운 좋게 프로그램 신청에 성공해 발굴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광화문 육조마당의 운영부스에서 간단한
사전 안내를 듣고 배포물을 수령한 후 삼군부터, 월대터, 의정부터 순으로 현장을 살펴보았다.
프로그램 진행은 서울시립대 국사학과의 신희권 교수가 맡아 자세한 해설을 해 주었다. 조선 초 경복궁과 육조대
로의 완성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으로 임진왜란 후의 상황, 그리고 고종 시기의 경복궁 중건, 일제강점기 동안의
훼손, 현대에 이루어진 광화문 복원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흥미진진한 고고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다시 풀어보려 한다. 이하의 내용은 신희권 교수의 해설을 바탕으로, 기자가 여러 가지 자료
조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더해 종합한 것임을 밝힌다.
광화문 역사광장 내 발굴조사 현장 시민공개 및 해설 프로그램인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고고학 이야기’의 운영부
스에서 간단한 사전 안내를 듣고 배포물을 수령한 후 발굴 현장으로 출발했다. ⓒ이정규
육조대로, 의정부와 삼군부
재미있는 사실은 임금과 신하의 시각에 따라 육조대로를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는 것이다. 왕의 시각이 중심이
하지만 경복궁과 육조 관청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소실되고 만다. 광해군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의 재건
이번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는 발굴터는 의정부와 삼군부 건물의 외행랑이 위치했던 곳이며, 의정부 본 건물터는
배포물로는 해설 수신기, 리플릿, 생수와 간식, 조끼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정규
광화문 앞쪽에 발굴조사를 위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