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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지나쳤던 이곳, 알고 보니 고종의 이야기가 담겼다?

  • 등록일 2022-05-23
  • 작성자 관리자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부터 '환구단'까지…도심 속 '대한제국 역사' 흔적 찾기!

필자는 평소 자주 지나치는 서울 도심 속, 숨어 있는 역사적 문화재를 찾아 길을 나섰다. 우선, 광화문 광장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 북동쪽 모퉁이에 작은 누각과 비석이 눈에 띈다. 평소 많은 서울 시민들이 오가는 거리지만 그 건물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이곳은 1902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고종황제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공표하기 위해 세운 비석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칭녕기념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 현판에는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비각(碑閣)'이라는 말보다 높은 단계다.


비각은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건축사적 의미도 있는데 조선왕실에서 관장해 진행한 마지막 전통양식 건축물이라고 한다. 의미를 알고 다시 보니, 광화문을 지날때마다 쉽게 지나치던 작은 누각이 달리 보인다.

세종대로 사거리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와 비각인 '기념비전' 전경.
세종대로 사거리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와 비각인 '기념비전' 전경. ⓒ 박우영
칭경기념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의 남쪽 아치 모양의 '만세문(萬歲門)’이 보인다.
칭경기념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의 남쪽 아치 모양의 '만세문(萬歲門)’이 보인다. ⓒ 박우영
아치 모양의 가운데 새긴 ‘만세문(萬歲門)’ 글씨는 영친왕이 6세 때 쓴 것이라 전해진다
아치 모양의 가운데 새긴 ‘만세문(萬歲門)’ 글씨는 영친왕이 6세 때 쓴 것이라 전해진다. ⓒ 박우영
기념비전은 받침돌을 높이 쌓고, 둘레에 돌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작지만 위엄이 있어 보인다.
기념비전은 받침돌을 높이 쌓고, 둘레에 돌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작지만 위엄이 있어 보인다. ⓒ 박우영
하늘로 뻗은 추녀, 이를 천상의 구름처럼 떠받치는 다포식 공포를 배치한 구조다.
하늘로 뻗은 추녀, 이를 천상의 구름처럼 떠받치는 다포식 공포를 배치한 구조가 눈에 띈다. ⓒ 박우영
돌난간 4면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과 십이지 동물상이 배치되어 있다.
돌난간 4면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과 십이지 동물상이 배치되어 있다. ⓒ 박우영
'기념비전(紀念碑殿)' 현판 글씨는 순종이 세자 시절 썼다고 전해진다.
'기념비전(紀念碑殿)' 현판 글씨는 순종이 세자 시절 썼다고 전해진다. ⓒ 박우영
비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기념비'는 자세히 볼수 없다. 바깥에서 바라본'기념비' 모습.
비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기념비'는 자세히 볼수 없다. 바깥에서 바라본'기념비' 모습. ⓒ 박우영
혹시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비전'을 관심있게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혹시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비전'을 관심있게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 박우영

고종황제 즉위식이 거행됐던 '이곳'에 담긴 의미


광화문에서 조금 떨어진 서울시청 근처 웨스틴조선 호텔까지 걷다보면, 호텔 뒤쪽으로 고종 황제와 관련된 또다른 역사적인 명소가 있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법한 장소인데, 아는 시민들이 많이 없지만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57호로 지정되어 있는 '환구단'이다.


'환구단'은 원래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에서는 제천의례를 오랜 기간 행하지 못했었다. 1897년 고종이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 이후, 환구단을 세우고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환구단'은 황제의 나라에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대한제국 시대를 여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주독립국의 수립을 의미한다. 이런 역사를 되새기며 '환구단'을 방문해보니, '대한제국'이었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다.


서울 도심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문화재를 찾아 보니, 왠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묘한 느낌을 받았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환구단'뿐만 아니라 평소 스치듯 지나치던 거리에서 이런 문화재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기울여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오묘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서울광장 동쪽 건너편에 위치한 '환구단' 정문 전경.
서울광장 동쪽 건너편에 위치한 '환구단' 정문 전경. ⓒ 박우영
환구단 안에 들어가면, 환구단의 상징물 '황궁우'가 보인다.
황제가 천제를 올리는 '환구단'은 현재 '황궁우'와 '석고' 등 일부만 남아있다. ⓒ 박우영
황궁우(皇穹宇)는 3층 팔각건물로 하늘신들의 신위와 태조의 신위를 보관하던 곳이다
환구단의 부속건물 '황궁우(皇穹宇)'는 하늘신들의 신위와 태조의 신위를 보관하던 곳이다 ⓒ 박우영
 '황궁우'는 외부에서 보면 8각의 3층 구조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통층 건물이다.
'황궁우'는 외부에서 보면 8각의 3층 구조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통층 건물이다. ⓒ 박우영
황궁우 계단 난간에는 해태상이 배치되어 있다.
'황궁우' 계단 난간에는 해태상이 배치되어 있다. ⓒ 박우영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악기인 북의 모형을 떠서 만든 돌 북 '석고'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악기인 북의 모형을 떠서 만든 돌 북 '석고' ⓒ 박우영
황궁우 우측 공간에는 환구단의 난간석으로 쓰였던 석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황궁우 우측 공간에는 환구단의 난간석으로 쓰였던 석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 박우영
황궁우의 정문이자 환구단과 황궁우를 연결하는 통로에 설치되어 있던 '삼문'
황궁우의 정문이자 환구단과 황궁우를 연결하는 통로에 설치되어 있던 '삼문' ⓒ 박우영
아치형의 '삼문'을 통해서 바라본 황궁우 전경.
아치형의 석조 '삼문'을 통해서 바라본 황궁우 전경. ⓒ 박우영
환구단에서 위패를 모신 황궁우로 연결되는 답도(踏道). 계단에는 쌍룡과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환구단에서 위패를 모신 황궁우로 연결되는 답도(踏道). 계단에는 쌍룡과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 박우영
안쪽에서 바라본 '환구단' 정문 내측 풍경. 문 뒤로 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환구단' 내측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문 뒤로 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 박우영